한 달 전, 멘토 찾기 게시판에 비전공자로 이제 막 학원을 수료해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연락이 오지 않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조언해줄 사람을 찾는 글에 마침 집 근처이기도 하고해서 어느 정도의 도움은 드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내가 있는 장소로 올 수 있다면 쪽지를 달라고 댓글을 달아 두었었다.
그런데 어제, 네이버 카페 앱으로부터 댓글 알람이 하나 왔다.
그 댓글에 해당 질문과 전혀 관련이 없는 누군가가 조언을 구한다며 쪽지를 보냈다고 다짜고짜 대댓글을 달아둔 것.
지금도 나는 그 쪽지를 열어보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그 쪽지를 열어볼 생각이 없다.
잊을만 하면 꼭 한 번씩 이런 이들이 있다.
“초면에 실례인줄 알지만 몇 가지 질문 좀 하겠습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쪽지 드립니다.”
이게 굉장히 모순적인 건데, "실례"인줄 알면서 실례를 무릅쓰고 실례를 한다는 거다. (그 정도의 시급함을 요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나마 이렇게 "실례"를 언급하면 다행이랄까?
대부분의 이런 류의 쪽지나 메일은 다짜고짜 내가 질문을 하겠다며 질문을 죽 늘어놓는 경우가 더
많으니 말이다.
오늘 받은 쪽지도 마찬가지로
“개인적으로 여쭤보고 싶은것이 몇 가지 있어 조언을 구하고자 쪽지 드렸습니다.”
라며 왔으니…
내 기억이 맞다면 자신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할 의사를 타진하고 연락을 취한 건 지난 5년
동안 단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
질문하기 전에 상대의 양해를 구하는게 먼저다.
온라인이라도 예의라는게 있다.
길을 가다 길을 물을 때에도 다짜고짜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경우는 없다. 대다수 일단 물어볼 만한 사람을 물색(?)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 "저… 실례합니다", "죄송한데…" 라며 길을 묻기 전에 상대의 걸음을 멈추고 말을 걸어도 된다는 동의를 구하는게 먼저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 예의라는걸 갖다 버린 인간들이 많아져서 이런 사람들이 별로 없기는 하지만… 그나마 해외로 여행을 나가서 길을 물을 때에는 적어도 "Excuse me…?", "あの… すみません…"으로 운을 뗀다.
상대가 나에게 집중해주기 바랄 때 "실례해도 괜찮겠느냐"고 상대의 양해를 구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온라인이라고해서 다를 바가 없다. 상대방에게 무언가 질문을 하거나 조언을 얻고 싶다면 먼저 질문이나 조언을 구해도 괜찮을지를 묻는게 먼저다.
친구나 직장 동료라면 다짜고짜 질문을 해도 괜찮을지 몰라도, 적어도 모르는 이에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무례다.
종종 온라인에서는 무슨 예의를 찾냐며 ㅆ선비, 꼰대 운운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데 그건 본인들이 예의가 없어서 따져대는 것이지 온라인에서는 예의를 찾을 필요가 없는게 아니다. (사람이 찔리면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화를 내며 타인을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더라)
내가 도움을 주겠다고 한것은 질문자의 질문이지 제 3자가 아니다
나는 분명 A의 글을 읽고, 그 글의 내용으로부터 조언을 드릴 수 있겠다라는 판단을 했으며, 그에 따라 내가 조언을 드릴 의향이 있으니 생각이 있으면 쪽지를 달라고 "A"에게 댓글을 남긴 것이다.
만약 A의 글이 멘토 찾기 게시판이 아니라 질문 게시판에 있었고 글에 달아둔 답변에 이어서 제 3자인 B가 추가 질문을 올렸다면 이야기가 달랐을거다. 왜? 애초에 질답 게시판에 답변을 단 것 자체가 내가 해당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고, 질답 게시판이 그러라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질답 게시판도 아니고 멘토를 찾는 게시판에서 자기가 가진 문제와 해당 문제에 대해 조언을 해줄 사람을 찾는 글에 쪽지를 달라고 한 것은 그 사람에 한정된 것이다.
질문과 통보는 다르다.
만일 "몇 가지 조언을 구하고 싶은데 쪽지를 드려도 괜찮을까요?"라고 덧글이 달렸더라면 쪽지를 받을 지 말지를 결정해서 보내도 괜찮다 혹은 싫다는 답을 달았을 거다. 헌데, 이건 쪽지를 보냈으니 쪽지를 확인해보라는 일방적인 통보나 다름없다.
과장 조금 보태서 성격 파탄자가 아닌 이상에야 조언을 구하고 싶은데 질문을 해도 괜찮겠느냐 묻는데 싫다 안된다하는 이는 거의 없을거다. 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이가 다짜고짜 질문을 던져놓으면 질문에 답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어떤 이도 답변 자판기가 아니다. 커뮤니티에서 질문에 답변을 단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조언을 준다고 해서 그것은 불특정 다수로부터 질문을 받겠다는 의사표현이 아니며 누구든 나에게 질문을 던져도 좋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누군가에게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질문할 권리가 있다면, 그걸 철저하게 묵인할 권리 또한 상대방에게 있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무시하겠다면 그 사람에게 반대로 예의를 차리지 않는 것 역시 정당한 나의 권리이다.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더구나 그것이 일면식도 없는 상대를 대할 때에는 적어도 지켜야할 예의라는 것이 존재한다. 굽신거리라는 것이 아니라 예의를 지키라는 것이다. 실례인 줄 알면 실례를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실례인 줄 알면 양해를 구하는 것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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